Lied Projekt (1) Brahms _ 프로그램 노트

글: 강자연

Wiegenlied (자장가) Op. 49 No.4 

모차르트, 그리고 슈베르트의 자장가에 이어 세계적으로 사랑 받는 자장가이다. 너무나 많은 버전으로 불려지고 각색되어 브람스가 애초에 작곡한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오리지널 버전이 많이 퇴색된 느낌이 있으나, 그의 복잡다단한 음악성향을 명료하고도 순수하게 표현해서 마치 수세기 동안 전해져 내려온 민요처럼 전세계적인 공감을 얻어낸 명곡이다. 베르타 파버는 브람스가 지휘하던 여성 합창단의 멤버였고, 그 때부터 브람스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이 곡은 결혼해서 비엔나에 정착한 베르타가 둘째 아이를 낳았을 때 브람스가 축하의 편지와 함께 보낸 출산 선물이었다. 가사는 예전부터 독일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오랜 시어를 브람스가 발췌해서 적은 것이다. 평생 독신이었지만, 아이들을 사랑했고, 또 어머니를 그리워했던 브람스는 늘 호주머니에 사탕을 들고 다니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Dein blaues Auge (그대의 푸른 눈) Op. 59 No. 8   

“클라라는 사랑스런 열세 살짜리 소녀로 보인다. 그러나 더 자세히 살펴보면 그녀의 모든 점이 달리 보인다. 가냘프고 예쁜 작은 얼굴은 약간 기묘한 눈을 담고 있고 친절해 보이는 입내는 기실 조롱하거나 우울한 기운을 담고 있다. 우아함과 부주의함이 그녀의 동작에 혼재되어 있다. 이러한 특징은 그녀가 일부러 만든 것도 아니고, 그녀의 나이에 어울리는 것도 아니다. 이 어린 연주자는 기쁨과 고통으로 얽힌 기나긴 이야기를 들려준다. 열세 살짜리 아이가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인가? 그것은 음악이다. “ 

- 요한 페터 뤼저, 함부르크 저널 <카에칠리아>에 실린 클라라 비크에 관한 에세이 -         


클라라는 푸른 눈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녀의 눈은 한번 보면 쉬이 잊지 못할 눈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엄청나게 크고 검은 눈동자에 비범한 연주실력이 더해져 사람들은 조숙한 클라라에게서 이미 우울의 기운을 감지했다.   브람스의 삶에 큰 부분을 차지했던 아름다운 여인들은 그에게 고통이자 안식이었다. 그 눈을 바라보고 있는 화자는 그녀가 나에게 무엇을 보느냐고 물을 때는 그 눈을 보면서 내가 회복된다고 말했지만, 그 타오르는 듯한 눈을 바라보는 나는 고통스럽고 아프다. 그래서 너의 두 눈은 호수처럼 맑고, 차다. 그는 로렐라이 전설에 나오는 아름다운 로렐라이의 마성에 빠져서 목숨을 잃고 마는 사람들처럼 고통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희생양 같다.   



Die Mainacht (오월의 밤) Op.43 No.2   

Op. 43 으로 묶인 네 곡의 노래 중에 특히 앞의 두 곡에서 브람스는 메조 소프라노 에 대한 선호가 뚜렷하다. 음악은 전조해서 올리거나 높일 수 있으나, 중 저음의 우수에 찬 목소리가 필요한 곡들이고 그것이 어쩌면 브람스의 전반적인 음악적 톤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그는 ‘가을의 작곡가’이기 때문이다. 이 노래의 배경은 가을이 아니다. 오월의 어느 밤이다. 달빛이 비치는 푸른 잔디 위를 걷고 있는 풍경은 평안하고 나이팅게일이 노래할 때는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곳을 걷고 있던 나의 마음은 평안과는 거리가 멀다. 나무 사이 사이에서 행복하게 노래하는 비둘기 한 쌍을 보고 있는 것이 나에게는 아픔이다. 자연의 일상적인 모습을 그저 아름답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어서 나는 고개를 돌리고 더 어두운 구석을 찾아 숨는다. 그리고 홀로 외로운 눈물을 흘린다.   


나는 누군가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나의 그 누군가는 새벽에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는 햇살 같이 환한 웃음을 지녔고, 그 웃음이 내 영혼을 녹였었다. 이 세상에서 너를 찾을 수 있을까 라는 독백은 이 세상에서 그를 다시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말과 같다. 나의 눈물은 타는 듯이 뜨겁고, 뺨을 흐르던 눈물은 이게 내 몸을 뒤흔들고, 떨게 한다. 나는 아직 그의 부재에 대해 평안할 수 없다.   그의 모든 가곡을 자전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그는 적어도 Von Ewiger Liebe 와 Die Mainacht 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브람스처럼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가 발설되거나 공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리고 조심했던 인물도 어딘가에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잡을 수 없고, 가질 수 없고, 회복할 수 없는 관계를 노래하고 있다. 그에게 그것이 클라라였다 해도, 이 곡은 부재와 이별을 겪은 모든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곡이다. 브람스는 부재를 받아들이고 수용하기 보다 고통스러워 하고 절규하고 아파한다. 차갑고 냉정하고 이성적으로 보이는 북독일인의 뜨거움을 정제하지 않고 보여준다. 그는 이제 막 서른 초반의 혈기를 지닌 낭만주의자였다.   



Botschaft (소식) Op. 47 No.1 

 브람스는 슈베르트의 줄라이카를 대단히 동경했는데 이 곡의 분위기 역시 사랑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바람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줄라이카와 흡사하다. 그러나 브람스의 음악은 바람에게 지침을 주는 남자를 묘사하지 그 메시지를 전달받을 소녀를 그리진 않는다. “불어라 부드럽고 사랑스런 바람아 나의 연인의 뺨과 머리로. 만일 그녀가 나의 안부를 물으면 그의 고통은 끝이 없다고 그러나 너무 좋은 당신이 그를 생각하고 있기에 그는 희망이 있다고 말해주렴.”   


19세기 독일에서 14세기 페르시아의 시들이 왜 유행을 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 시는 페르시아의 시어들을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다우머 라는 시인이 엮어 <하피스>라는 제목으로 출판한 시집에 수록되어 있다. 진지한 단조 조성으로 시작하고 있어서 전주만 들으면, 슬픔, 절망 또는 적어도 실패한 연애를 말하는 듯한 분위기이지만, 의외로 이 시는 서로 관심이 있는, 또는 서로에 대한 관심을 확인하는 남녀의 설렘을 드러내는 연애시다.   


오른손의 triplet 은 가볍고 (leggiero), 우아하게 (grazioso) 연주하기가 몹시 까다롭기 때문에 많은 피아니스트들을 곤경에 빠트리면서 이 노래의 유명세에 한몫 했지만, triplet 은 여기서 말하는 부드럽고 (lind) 사랑스러운 (lieblich) 산들바람 (luftchen) 이기 때문에 무거우면 금물이다.   


피아노 반주부도 어렵지만, 구조도 생각보다 복잡하다. 시어는 총 세 부분으로 나뉘며, (4연-2연-5연) 1인칭 시점이다. 첫 부분은 내가 바람에게 하는 말 “그녀에게 좀 가줄래?” (내가 가고 싶지만, 나 대신 말이야), 두 번째는 그녀가 바람에게 하는 말 (을 내가 상상한 것) “그는 어떻게 지내니?” 마지막 부분은 바람이 그녀에게 하는 말 (을 내가 상상한 것), “그는 정말 잘 못 지냈지. 그렇지만 이제부터는 잘 지낼 거야. 너의 마음을 알았으니까.”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전체는 모두 화자인 남자의 대사이다.   


이렇게 변화하는 화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er (그) 는 나이고, du (당신)은 그녀라는 걸 알 수 없게 된다.  바람이 전해준 이 기쁜 소식, 그녀도 나를 좋아한다는 것. 그래서 제목이 소식, 통지, 보고, 뉴스라는 뜻의 (botschaft) 이다. 브람스에게는 매우 드문 일종의 해피 엔딩인데, 사랑이나 좋아하는 감정에 대해 진솔하나 투박하고, 수줍어하면서도 어찌 보면 꼬여있는 듯한 그의 부자연스러움이 그대로 묻어나는 곡이 아닌가 싶다.   



Das Mädchen spricht (소녀가 말하다) Op. 107 No.4   

결혼한 지 얼마 안된 아가씨가 제비에게 묻는다. 제비 부부가 아침마다 정겨워 보였던 모양이다. (아마도) 제비 신부(!)에게, 결혼한지 얼마나 되었니? 뭐가 그리 속닥속닥 할 얘기가 많은지? 그러다가 아 너도 나처럼 신혼이구나! 그래서 그리 재미난 거지? 뭐 이런 알콩달콩 말을 건네며 사실은 자신의 신혼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마지막 마무리를 보면 제비는 아마도 끄덕끄덕 긍정적인 대답을 건넨 듯하다.   



Mädchenlied (소녀의 노래) Op. 107 No. 5   

결혼을 앞두고 예복을 준비하려 물레를 돌리는 여인들과 그들의 예비 신랑들의 행복과 설렘. 그 보편적인 행복에 참여하지 못하는 나의 고통, 누구도 알지 못하고, 묻지도 않는, 누구도 그로 인해 원망할 수 없는 그런 삶의 외롭고 힘든 자락은, 사실 들쳐보면 누구에게나 살면서 한번쯤은 있게 마련이다.    


혼자만의 십자가를 지고 홀로 눈물을 흘리는 여인의 이야기를 슈만과 브람스 모두 그것도 똑같이 Op.107 로 쓴 것은 후자를 주체로 볼 때 주목할 대목이다. 브람스는 슈만이 세상을 떠나기 얼마 전 엔데니히의 정신병원에서 쓴 여러 난해한 음악들 중 하나인 Die Spinnerin (물레 잣는 여인)이라는 곡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1852년) 그러나 브람스에게 이미 슈만이 세상을 떠나고 30여년이 지난 시점에도 일곱 아이의 어머니로, 동시에 그들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으로, 그리고 유명 음악가로 쉼 없이 일해온 클라라 슈만의 외로운 뒷모습이 이 물레 잣는 여인의 눈물에 오버랩 되었는지도 모른다.   


1연과 2연에서 넓게 주변을 보여주던 카메라가 3연에서 갑자기 줌인 되며 물레 잣는 한 여인의 내면으로 들어온다. 쉼 없이 돌아가던 물레의 오르내림이 피아노 반주의 반복적인 아르페지오로 형상화된다. 내면의 슬픔을 보이는 대목에서 음악은 변화를 보이며 그 감정표현에 반응하지만, 흘러내리는 눈물에도 물레의 쉼 없는 움직임은 여전히 이어진다. 삶도 그렇게 꾸역꾸역 이어진다.   



Nachtigall Op.97 No.1   

브람스의 노래 중 이전에 존재한 적이 없는 유형의 노래다. 브람스는 메시앙은 아니지만, 그의 새에 대한 음악적 묘사는 어딘가 괴기스러우면서도 새의 움직임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살아있는 리듬들과 증 6도, 감 7도 화성들로 사실적이다.   나이팅게일, 또는 우리말로 밤꾀꼬리라고도 불리는 이 새를 백과사전은 이렇게 묘사한다: “구슬픈 소리로 운다. 숲과 풀밭에 살며, 숲 속에서 잘 나오지 않는다. 단지 울음소리만 들릴 뿐인데 성량이 풍부하고 옥타브가 높아 다른 새가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운 소리를 갖는다….”   


'밤'이란 뜻을 내포하는 나이팅게일이란 이름이 붙은 이유는 다른 새들 다 자는 밤에 노래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한밤중에 고음으로 울어대기 때문에, 실제로는 밤꾀꼬리 서식지 근처에 사는 사람들의 밤잠을 설치게 만드는 주범이라고 한다.   밤꾀꼬리의 노랫소리를 들으면서 왠지 모를 가슴의 아픔을 느꼈던 화자는 그 소리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누군가의 목소리를 기억하게 해서 고통스럽다는 걸 깨닫는다. 상실의 감정을 어떤 사랑의 언어보다도 생생하게 표현한 수작이다.    



Lerchengesang Op.70 No.2   

다소 기괴한 밤꾀꼬리의 노랫소리와는 매우 대조적으로 Lerchengesang 에 나오는 종달새는 마치 하프 반주에 맞춰 유영하듯, 한층 여유롭다. Nachtigall의 시점이 밤이라면, Lerchengesang은 새벽녘, 그리고 계절은 따스하고 향기로운 바람이 부는 봄이다.   노래의 중반을 넘어서면서 화자가 말하고 있는 지난 날에 대한 기억(erinerungen)이 좋은 기억인지 고통스런 기억인지는 알 수 없으나, 화자는 그 모든 것을 수용한 듯 아련하지만 달콤하고 (Susse) 포근하게 (sanft) 느끼고 있다. 그러나 피아노의 오른손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10도의 interval 들은 마치 닿을 수 없는 어떤 것에 대한 갈망이 끝까지 해결되거나 목적지에 다다르지 못한 것처럼 애잔하게 반복된다.   



Vergebliches Ständchen (헛된 세레나데) Op. 84 No.4   

“우리가 모차르트처럼 아름다운 작품은 쓰지 못할지언정 최소한 그처럼 순수한 작품을 씁시다.” 브람스의 Op.84는 총 5곡으로 되어 있는데 모두 대화풍의 노래인 것이 특징이다. 1-3번은 딸과 어머니의 대화, 그리고 4-5번은 남자와 여자의 대화인데, 모두, 사랑에 관련된 위트있는 대화들로 이뤄져 있다. 민요 수집에 적극적이고도 열정적이었던 브람스는 여러 민요의 가사와 멜로디를 수집했고, 이를 그의 작품에 다양하게 사용했다. Op.84의 4번은 1881년에 출판된 독일 민요집에 실려 있는 <라인 지방 민요>를 가사로 하고 있다.   


세레나데는 보통 남자가 여자의 창문 아래에서 구애하면서 부르는 노래인데, 남자가 그녀의 창문 아래로 와서 연주하거나 노래를 하면 여자가 문을 열어 불러들이거나 답례를 하는 것이 보통인데, 이 곡에서는 남자가 완강히 거절을 당하고 있다. 그래서 해 봤자 소용 없는 세레나데 라는 뜻의 제목을 가지고 있다. 그녀가 완전히 마음이 없어 보이지는 않는다. Op.84 에 나온 엄마와 딸의 대화나 남자와 여자의 대화는 모두 남녀관계의 밀당이나 썸타기를 주제로 한 내용들이다. 그는 이 노래를 무척 마음에 들어 했고, 자신의 친구 칼벡에게 이 노래 하나를 위해 그의 모든 다른 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고 한다.   남자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그녀의 집 안으로 들어갈 기세이고, 그녀의 대사는 같은 음악에 깔려 있지만 어머니의 조언을 받아 (1-3번까지 그녀와 어머니의 대화가 이어진 바 있다.) 남자의 말을 따를 생각이 없다. 남자는 추운 날씨에 서 있다가 그의 사랑까지 식을 거라고 협박하나, 그녀는 그의 협박을 비웃는다. 가사 내용으로는 그녀가 그를 완강히 거부하는 듯 하지만, 음악으로 보면 그녀는 그에게 아주 마음이 없지는 않다. 그는 다시 올 것이고, 그녀는 결국 그를 들여보낼 것이다. ‘lebhaft und gut gelaunt’ 가볍고 유쾌하게 라는 브람스의 지시어도 밝은 결말로 향하고 있다.   



Minnelied (사랑의 노래), Op.71 No.5   

Minnesinger는 중세 독일의 시인과 가수들로, 주로 연애시를 노래하던 서정시인들을 뜻한다. 그들이 부르던 사랑노래를 Minnesang (연가)라고 했다. 궁정적 사랑으로서의 민네는 사랑의 열망으로서 개인적인 정열을 나타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한계를 인정하는 것으로 규범에 부합되는 궁정의 법도를 보여주었다. 남녀의 사랑을 주로 다루었으며 이때 남자는 기사이고 여자는 귀부인이다. 기사는 귀부인에게 아무런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은총만을 바라고 사랑의 봉사를 한다. 체념하면서도 끊임없이 흠모하는, 높은 기상의 고양된 마음은 충족될 수 없는 동경을 통해 지속적이고 정신적인 감동으로 이어진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연모의 정이 세속적인 귀부인에게로 옮겨와 순수연애를 주제로 한 문학이 전개되었다. 브람스가 횔트가 민네리트 라는 제목을 썼을 때는 이러한 중세의 연애시를 기본으로 했다는 전제를 지니고 있다.   


슈베르트와 멘델스존도 같은 시어로 곡을 썼지만, 브람스의 노래가 가장 유명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멜로디는 조세프 군글 (Joseph Gungl (1810–1889))이라는 작곡가의 춤곡의 멜로디에서 따왔다고 한다. 실제로 군글은 여러 번 브람스가 자신의 멜로디를 훔쳐 썼다고 불평했다고 한다. 숲과 초원, 새들과 저녁노을 등 매우 목가적인 풍경을 사랑의 이미지와 연관시키고 있는데, 평생을 비엔나와 같은 대도시에서 생활했던 브람스에게 사랑은 언제나 훨씬 복잡한 문제였다. 자연 속에 이렇게 아름답고 순수한 관계에 대한 작곡가의 일종의 이상화된 모습이 음악으로 구현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Von ewiger Liebe (영원한 사랑) Op.43 No.1   

발라드라고 부를 수 있는 이 곡의 가사는 Wenzig라는 독일인이 번역했고, 다시 Fallersleben 이라는 독일 시인이 시로 구성한 것이다. 정확히는 지금의 독일과 폴란드로 나뉘어져 있는 루사티아 라는 지역에 사는 세르비아인들의 일종의 전래동화 같은 이야기이다. 브람스는 200여곡의 가곡 중 46곡에 작자 미상의 가사를 사용했다. (그 중 4곡은 성경을 사용했다.) 그는 ‘미천한’ 가사를 가지고 ‘위대한’ 곡을 쓰고 싶었던 것일까? 그나 괴테나 하이네 같은 ‘위대한’ 가사를 쓴 적도 많이 있다. 그러나 그는 가끔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드라마를 가진 텍스트라면 출신(?)을 가리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노래는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   


5분여 되는 꽤 긴 발라드의 구성은 다소 영화와 같다. 처음에 카메라 앵글은 어둡고 적막한 시골의 풍경을 비춘다. 저녁의 어둡고 다소 두렵기까지 한 고요 속에서 새들도 소리를 내지 않는다. 거기에 희미한 두 남녀의 실루엣이 등장한다. 남녀는 연인인 것으로 보인다. 카메라가 점점 줌인 되면서 우리는 남녀의 대화를 엿듣게 되고, 그들의 갈등 속으로 빠져들어간다. 남자는 자신의 연인이 자신과의 관계 때문에 다른 이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상황을 걱정한다. 그의 대사를 살펴보면 그들은 경제적, 또는 종교적, 인종적인 다름을 가진 사람들일 것 같다. 어떤 식으로든 공평치 않은 세상에서 그들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인 것이다. 그는 연인을 위해 제안한다. 그들이 빠르게 사귀었듯이 그렇게 빨리 헤어지자고 단호히 말한다. 


피아노 반주부는 여러 가지 장치로 남자의 감정적 괴로움을 대변하고 있다. 격렬해진 음악이 피아노 interlude 에서 절정으로 치닫다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마치 남자의 절규가 이제 오열로 변하고 그의 무릎이 꺾이면서 주저앉는 것처럼 음악이 가라앉으면서 화자는 남자에서 여자로 변한다. 남자의 음악은 3/4박자에 격앙된 triplet 아래에 왼손이 사냥음악에 등장하는 호른을 모방하고 있다. 반면 여자의 음악은 좀 더 온화하게 가라앉은 6/8 박자에 자장가 이다. 연인의 두려움과 불안함을 달래면서, 그녀는 처음엔 조용히, 그리고 점차 단순하고도 강인한 확신을 보여준다.   


브람스가 클라라에게 원했던 것은 이러한 흔들림 없는 확신이었을까. 그녀는 누가 보기에도 그녀에 비해 부족한 그의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모든 역경을 이겨나갈 것임을 확신하고 있다. 브람스가 언제나 동경했던 메조 소프라노의 음성으로 말이다. 그녀는 무쇠와 강철보다 견고한 그들의 사랑을 이야기 하는데 이 대목에서 왼손 저음부에 무쇠를 재련하는 망치의 두들김이 반복되어 등장한다. 그녀의 흔들림 없는 확신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4마디의 후주부는 승리의 헤피엔딩이기 보다는 다소 힘없이 마무리 된다. 장조이지만 슬픔과 포기가 묻어나는 장조다. 그들의 관계에 대한 브람스의 다소 비관적인 예측이 그녀의 확신보다 우위에 선 느낌이다.   


이 곡을 작곡하던 1864년 브람스는 31세, 클라라는 44세로, 슈만이 죽은 지 이미 8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브람스는 슈만의 죽음 이후 클라라와 진지한 관계로 발전하는 쪽으로 진행하는 듯 하다가 급작스럽게 관계를 정리하는 모습을 보였고, 중간에 아가페 폰 지볼트라는 여성과 약혼과 파혼을 거듭하기도 했다. 그러나 클라라와의 관계는 일평생 지속되었으며 그의 일생에 가장 중요한 여성이 클라라였음은 자명한 사실이었다. 이 곡을 완성한 1866년에 클라라에게 이 곡을 불러 주었을 때 클라라는 흐느끼느라 어떠한 말도 하지 못했다고 전해진다.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네이버 블로그
floating-button-img